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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물운동의 역사와 과제(오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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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918회 작성일 12-04-1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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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물 운동의 역사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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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정의 오성규 사무처장
 

 
1. 들어가며
 

오늘날 환경운동은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관점과 방식으로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중에서 중심이 되는 분야를 꼽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반핵운동’이다. 이른바 ‘반공해 운동’의 대표 격이다. 그리고 반핵운동에 버금가는 역사를 가진 운동이 ‘물 운동’이다. 물 운동과 반핵운동이야말로 한국의 환경운동을 이끌어 온 양대 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반핵운동이 한국의 환경운동의 ‘이념성’을 키웠다면, 물 운동은 ‘대중성’을 뿌리내리는 바탕이 되었다.
 

1) 물 운동의 다양성
 

우리나라는 6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주요 4대강 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각 지천들의 문화와 자연, 생태계 등이 빠르게 파괴되었으며, 수질악화는 점차 심각해 졌다. 그리고 하천주변은 주차장, 도로, 편의․위락시설, 유흥업소, 기타 공단 등 인간중심적 개발로 점차 하천 본연의 모습을 잃어갔다.(김미선, 2003)
급기야 80년대 말에는 상수원에 독극물이 방류되는 수돗물 파동까지 겪게 되었다. 경제성장에 따라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물에 대한 낭비적 수요는 점점 더 증가하여 무엇이든 부족하면 무조건 공급하는 “공급중심의 물정책”으로 인해 전국은 대형댐 건설로 인해 생태계의 심각한 파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주민들과 행정이 대립하는 사례가 급증하였다.
 

“물 부족국가”에 대한 논란은 국가의 물 정책 근간에 대한 문제제기로 확산되어 수자원장기종합계획에 대한 대대적 수정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고, 물 수요와 공급에 대한 사실적, 과학적 검증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한 계기는 우리나라의 물 정보 부족을 여지없이 들춰냈고, 각종 물관련 국가계획의 기저에 불확실성이라는 한계를 깔아놓게 되었다.
 

지표수의 부족은 지하수에 대한 이용률을 급격하게 높였고, 지하수에 대한 관리부실이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기도 했다. 이 밖에 수돗물 불소화 논쟁, 대도시 공간에 배수지 건설로 인한 녹지 파괴 등 물과 관련된 시민운동은 다양한 영역과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2) 한국 환경운동의 효시이자 대중화의 동력
 

사실 물 운동은 한국 환경운동의 효시라 할 수 있다. 1978년에 결성된 ‘낙동강보존회’는 ‘낙동강 하구둑 건설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물론 주민들의 자생적 저항운동 성격이긴 하지만 단순한 피해보상 투쟁을 넘어선 본격적인 조직운동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 후 1985년 ‘온산병’ 사건이 사회 문제화 되는 등 반공해 운동이 환경운동의 중심에 있었으나 여전히 조직적인 피해보상운동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다만 공장이나 공단의 입지를 반대하는 운동 조직되기 시작하면서 ‘예방적 운동’으로 진화하는 양상을 띠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서 물 운동은 한국의 환경운동이 대중적 운동으로 발전하는데 중요한 전기를 제공했다. 1989년 수돗물 중금속 오염 파동(1차 수돗물 파동), 1990년 수돗물 발암물질 THM(트리할로메탄) 파동(2차 수돗물 파동), 1991년 두산전자 페놀 원액 유출 사건(3차 수돗물 파동)은 국민들이 생명수로서의 물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환경운동에 대규모의 시민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90년대 이후는 주로 하천운동 중심으로 물 운동이 전개되었다. 환경․시민단체들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하천보전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또 지방자치단체의 잘못된 하천이용계획(도로, 주차장, 복개 등)에 대해서는 지역사회의 여론을 형성하여 이를 저지하고 올바른 하천보전 계획을 제시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정부의 댐 건설 같은 수자원 개발정책의 문제점을 사회화하고 다양한 자원을 동원하여 백지화시키는 등 활발한 운동들을 전개하였다. 하천보전 운동은 90년대 말을 지나면서 급속하게 성장하였으며, 주요 환경운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하천보전 운동의 활성화와 급속 성장에 비해 운동 프로그램은 발전하지 못했으며 일회성으로 그치거나 매년 똑같은 프로그램이 반복되면서 운동이 사회적으로 크게 확산되지 못하였다. 또 운동의 성과들과 경험이 공유되지 못하고 정보들이 제공되지 않아 지역의 경우 비슷한 이슈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기도 하였다. 특히 지난 10여 년간 지방자치제도가 시작되면서 지역 주민들의 생활환경과 밀접한 위치에 있는 하천보전 운동이 주민들의 자발적인 풀뿌리 운동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시민단체들만의 활동으로 국한되는 등 한계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21세기 우리나라 환경정책의 핵심에는 합리적인 물 관리와 유역관리 시스템 구축 등 하천과 관련한 정책이 주요한 과제로 제시되고 있어서 앞으로 시민단체들의 하천보전 운동이 어떠한 성과를 남기느냐에 따라 정책의 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며, 또한 시민단체들의 하천보전 운동이 얼마나 활성화되고 발전되느냐에 따라 시민사회에 기여도 달라질 것이다.
 
2. 사례중심으로 본 한국 물 운동의 역사
 

1) 초기의 물 운동(70년대 - 90년대 초)
❍ 낙동강 하구둑 건설 반대 운동
❍ 수돗물 파동과 샛강 살리기 운동
 
2) 90년대의 물 운동 

❍ 복개반대 운동과 지하수 보존운동 

❍ 수요관리 정책 전환 운동
❍ 내린천댐 반대운동 성공

❍ 동강댐 반대운동 성공 

❍ 물 절약 운동
❍ 한강특별법 제정운동
 

3) 2000년대의 물 운동
❍ 팔당상수원 아파트 건설 반대운동 성공 

❍ 유역보전운동
❍ 강살리기네트워크
❍ 강의날대회
❍ 수자원정책 전환 운동
❍ 한강하구 생태계보전운동
❍ 물의 공공성 지키기 운동
 

3. 한국 물 운동의 역사가 안고 있는 것들
1) 대중과 호흡하여 풀뿌리를 튼튼하게
2) 정의적 관점에서의 물 운동이 필요
3) 통합적 관점과 전문성 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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